설계비에는 무엇이 들어 있고,
어디에 더 써야 하는가
설계비를 줄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어느 단계에 더 투자해야 하는지 — 기본설계부터 감리까지, 설계비를 현명하게 쓰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설계비는 집짓기 전체 비용 중 가장 먼저 지출되는 항목이면서, 가장 먼저 줄이고 싶어지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공사비에 비해 금액이 작아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도면 몇 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계비 안에 실제로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어느 단계를 줄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알고 나면 — 설계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설계비 안에 실제로 무엇이 포함되어 있나
건축 설계 업무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도면을 받는 시점만 보이지만, 각 단계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가 함께 진행됩니다.
네 단계 외에도 설계 과정에서 진행되는 업무들이 있습니다. 구조기술사·기계설비·전기 전문가와의 협의, 시공사 견적서 검토, 자재 선정 자문, 인허가 이후 설계 변경 대응 등입니다. 설계비는 이 모든 과정의 대가입니다.
설계비를 줄이면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나
설계비를 낮추면 도면의 완성도가 낮아집니다. 완성도가 낮은 도면은 시공 단계에서 문제로 돌아옵니다.
- 견적 초과가 커집니다. 도면이 불명확하면 시공사가 항목을 개략적으로 견적합니다. 착공 후 "이 항목은 견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실시설계 도면이 상세할수록 시공사의 임의 해석 여지가 줄고, 견적 초과 폭도 좁아집니다.
- 시공 분쟁이 늘어납니다. 타일 종류, 창호 브랜드, 콘센트·등기구 위치, 주방가구 배치 등이 도면에 명시되지 않으면 시공사 견적 시 건축주의 요청사항이 반영되지 않은 견적이 나옵니다. 이것이 시공 단계에서 분쟁의 여지가 됩니다.
- 하자 발생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단열 두께, 방수 공법, 구조 배근이 도면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야 현장에서 기준이 됩니다. 도면에 없으면 시공사 판단에 맡겨지고, 그 결과는 건축주가 수년 후 하자로 경험하게 됩니다.
설계비를 500만 원 아꼈다가 공사비 협의에서 1,000만 원을 더 지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면이 미흡하면 현장에서 변경이 잦아지고, 변경이 생길 때마다 공사가 멈추거나 추가 비용이 따라옵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도 불명확한 도면은 분쟁의 빌미가 되고, 건축주 입장에서는 원하던 집과 달라지는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단계에 더 투자하고 어디를 조정할 수 있나
설계 단계별로 투자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 기본설계는 줄이면 안 됩니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평면과 공간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이 단계를 충분히 거치지 않으면 허가 이후, 혹은 공사 중에 변경이 발생하고 그게 추가 비용으로 돌아옵니다. 집을 짓는 이유와 살고 싶은 방식을 도면에 담는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 실시설계는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실시설계 도면의 상세도가 공사 품질을 결정합니다. 이 단계에서 줄어드는 것은 도면의 양이 아니라 도면의 정확도입니다. 정확도가 낮은 도면은 현장에서 시공사의 재량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감리는 범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법적 의무 감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외 건축사의 추가 현장 방문 횟수나 범위는 건축주의 예산과 현장 상황에 따라 협의가 가능합니다. 단, 골조 공사 중 철근 확인, 방수 공사 전 확인 등 핵심 공정에서의 감리는 줄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인증·컨설팅은 선택적 항목입니다. 패시브하우스 인증, 에너지 효율 등급 인증, 친환경 인증 등은 건축주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증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설계 품질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만합니다.
설계 계약 시 건축주가 확인해야 할 것들
설계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들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건축물의 설계 표준계약서」를 고시하고 있습니다. 건축주와 건축사 간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표준 서식으로,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하고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설계 계약 전에 이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면 분쟁의 여지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 업무 범위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는가. 기본설계·허가설계·실시설계·감리 중 어느 단계까지 포함되는지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설계 일식"으로만 표기된 계약서는 나중에 분쟁의 원인이 됩니다.
- 도면 납품 범위가 구체적인가. 건축도면만인지, 구조도면·기계설비도면·전기통신도면·소방도면까지 포함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조도면과 설비도면이 별도 비용인지도 사전에 확인해야 합니다.
- 설계 변경 시 추가 비용 기준이 있는가. 허가 이후 평면이 변경되거나 설계 범위를 벗어나는 요청이 생기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야 나중에 분쟁이 없습니다.
- 감리 횟수와 범위가 정해져 있는가. 감리가 포함된 계약이라면 현장 방문 횟수, 방문 시점, 감리 보고서 제출 여부가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 중도 해지 시 정산 기준이 있는가. 설계 진행 중 계약을 해지하게 되는 경우, 완료된 단계까지의 비용을 어떻게 정산하는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이 항목이 없으면 해지 시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설계비는 공사비의 5~10%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 비용이 나머지 90~95%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도면이 상세하고 정확할수록 현장 변경이 줄어들고, 견적 초과 폭이 좁아지고, 시공 분쟁이 생길 여지가 사라집니다. 설계에 제대로 투자하는 것이 공사비를 아끼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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